(전시)앤트리갤러리, <부드러운 주먹 떨리는 중심>

2024. 4. 12. 22:56전시

 

 

 

 

 

 

 

나의 외할머니는 눈이 안 좋으셨다. 나를 알아보려고 하던 그 촉감을 기억한다. 그녀는 나의 손을 더듬거리며 누르고 쓸고 감싸며 안았다. 나는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나에게 전달하려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따뜻하고 말랑거리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방에는 쿠션이 가득했다. 멍이 들지 않기 위해 삼촌이 만들어놓은 장치인 스펀지, 테이프, 바람을 막는 에어캡. 할머니가 취약해질수록 쿠션은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쿠션을 심리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혼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모든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 할머니가 조금씩 떼어져 방으로 옮겨지는 것처럼 점점 방은 뚱뚱해지고 할머니는 야위어 갔다. 그렇게 할머니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조금씩 떼어져 풍경이 되고 있었다.

나를 만지던 손길, 그 온도와 감촉, 그 마음은 애쓰는 손끝의 힘으로 나의 피부에 와 닿았고 나는 흡수하듯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때도 경계는 흐트러졌었다. 아마도, 죽거나 사랑하거나 그 지점 어딘가에서 경계는 흐트러지는 것일까?

 

나는 계속 무언가를 겨냥하지만 과녁은 흔들리고 화살은 구부러진다. 눈을 감고 나는 할머니의 방식을 떠올린다. 지금 내 살갗으로 느껴지는 감각을 그저 믿어야 한다. 맨 살로 맨 마음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표면은 미끄러지며 바깥에서 안으로 흐른다. 그곳에 닿기 위해 불안에 몸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따뜻했다가 차가워지고 딱딱했다가 말랑해지는 법.

떨리는 중심을 느끼며 부드러운 주먹으로 받아치는 법.

죽거나 사랑하거나 그 사이에서 새롭게 경계를 구축하는 법.

살아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이를 위한 일종의 단련이다.

 

-작가노트

 

 

 

●  떨리는 중심 부드러운 주먹

  기간 : 2021.11.12~2021.12.17

  참여작가 : 구은정

  장소: 앤트리갤러리